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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장 지중해 ( 터키, 불가리아, 그리 확인
    카테고리 없음 2020. 1. 24. 12:08

    5장.지중해(터키, 불가리아, 그리스)박물관과 미술, 공예품에 관해서 ​ 하나. 머리글자인 외국 박물관으로 아내의 소리를 관람한 곳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 하나 993년 프랑스어 교사 연수 때 파리에 1주 1이었지만 파리 전역에 화제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보려면 1주일 1정도 걸리는 박물관으로 할 아이 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한과의 나 풍임. 전시실이 200개가 넘고 소장품이 30만점 이상이라는 것을 항그와잉죠루에 마치면 이건 완전히 뛰게 하는 중요한 것만 건성으로 볼수밖에 없었다. 가장 우선적으로 물어본 것은 물론 유 1 하게 방탄 유리 속에 전시된 '모 과인 리자'와 조각'미로의 비덱스'였지만, 그것들을 본 소감은 '아, 이게 그 유명한 모 과인 리자라는 그림 이-구 나, 이 그림의 원본을 직접 내 눈으로 보크그와잉' 하는 것과 비디오 텍스의 스타일이 댁 무그와잉 크고 가슴을 제외하면 아름다운 여자보다는 정내용, 오히려 남성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정도 기대한 만큼 감동이 없었다. 이리하여 기억 그와잉눙 것은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libertéguidant le peuple)'라는 그림으로 다비드의 '그와잉폴레옹 하나세 황제의 대관식(Sacre de l'empreurnaploléonpremier)'등 주로 그림이다, 어쨌든 정신 없이 갈 수밖에 없도록 넓다는 것과 그래서 극히 1부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 도록을 사서 과인 중에 살펴보니 오리엔트 유물, 이집트 유물, 그리스 로마 유물, 세공품, 조각, 그림, 그래픽 예술 등에 과인해 전시돼 있었다. 양적으로는 엄청나지만 그림 등을 제외하면 대영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자국 내에서 제작된 것은 별로 없으며 특히 과인폴레옹 시절 각국의 고대 유물을 약탈해 온 것들이다. 하긴 로마가 요즘 프랑스 지상인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기 이전 야만적인 원주민 셀트족에게 이렇다 할 문명이 없었던 까닭에 그만큼 프랑스의 고대 유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박물관 전체가 분주하고 특징이 없어 한 문명의 진수를 다 볼 수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인도 뉴델리의 '국립박물관'과 캘커타의 '인도박물관'은 다르다. 규모는 물론, 루브르와 비교가 안 되지만 인더스 문명의 유물, 한국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간다라 미술품, 힌두 사원의 각종 조각과 보석 세공품 등 인도라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의 구체적인 역사를 한눈에 다른 이질적인 것들과 흩어지지 않고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국립박물관의 매우 가혹한 상아세공품과 지극히 정교한 부처의 두상이 흑백으로 인도 박물관 조각상인데, 이 조각 불상은 표정도 매력적으로 살아있고 얇은 옷 속에 비치는 몸매가 부처답지 않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되어 있어 밀로의 비닥스보다 정사내용용 오히려 더 육감적이며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두 박물관은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의 총체, 그 지상에서 내려온 문화의 흐름을 잘 보여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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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박물관 관람 사고는 때로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는 한 정부도 토지 역사의 유물 전부를 모아 전시하고 있는 만큼 그것들을 충분히 음미하기에는 당연히 많은 때가 있다. 짧은 여행 1정에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최근 나와 같은 가끔 다이의 사람들이 살아갈 구체적인 모습을 보며 함께 어울리때때로도 미흡하지만 화석처럼 건물 안에 전시되고 있는 옛 사람들의 유품을 감상하려면 거의 매일 때 때 로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필요한 경우, 아쉬운 대로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지만 메테오라의 같은 곳의 자연 경관은 사진이나 영상에서는 도저히 실제 모습을 느끼지 못하고 내가 들어 본 한 거리, 어느 술집의 분위기도 화면만에서 나오고 전혀 무관은 그냥 화면 1뿐이었다 그리고 그 후의 여행에서는 박물관 관람의 비중이 크지 않거나 아예 없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박물관 관람도 빼놓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깨달음은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서 시작됐다. 2.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 ​의 앙카라에서 마피아 가수의 소리 나는 연주를 감상한 나의 1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의 관람이 있었지만 물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터키의 수도라는 만큼 쑥쑥 고층 건물도 없고 안내서를 봐도 문명 박물관이 거의 유 1 한 관광지인 이 멋대가리 없는 도시의 박물관에 있는 힘든 볼거리가 있고 싶고 박물관을 코스에 넣은 것도 이 도시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별로 감정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1, 아미야 다소리 지어 보이는 박물관에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뜻밖에도 박물관 전시실에는 산뜻하고 깨끗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구석기시대의 타제, 간석기를 보면서 "이 정도 우리 정부에도 있지 않은가"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물로 분류된 토우와 대리석 등으로 만들어진 석상을 보면 내 표정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히,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각종 사람과 동물상들은 현대 조각가 작품도 손색이 없지만 제작 연대가 대개 B.C. 6,000년대였다. 하늘, 기원전 6천년! 6세기도 없고 기원전 60세기! 기원전 60세기라면 한반도는 어느 결과였을까? 단군이 고조선을 곤데힌 민국의 일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은 기원전 2333년인데...그것보다 4천년 전에 이런 말을 제작하는ㅅ우프니다니. 토기도 빗살무의 토기처럼 아래가 표쥬크하고 불안정한 모습이 없는 좁은 입에 아랫부분이 넓고 부가 있으며 매우 정교하게 채색까지 하고 도저히 6천년 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야, 이거 말로는 말도 안 되는군. 인도에서는년도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최근 기억할 수 없지만 기원전 6천년과 제가 무지었던 것인지 어쨌든 황당한 소견을 떨칠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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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옆 초기 청동기시대 전시실에 가면 이는 이미 꽉 찼다. 소원전 3천년 전 작품이라는 청동으로 제작된 사슴상이 전시되고 있으나 사실적인 뿔 모양에 살아 있는 눈, 콧구멍까지 크기가 작아 그렇지 이들을 당신에게 확대하면 특급 호텔의 로비에 설치해서 아마 현대 유명 작가의 작품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1 같다. 그것에 세심하게 힘을 넣은 금관, 금 팔찌 장식 벨트, 금잔, 김 주전자 등 모든 희망전 3천년 전의 것이라는 게 우리 신라 시대 유물을 보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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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에는 아시리아, 고 히타이트 시대의 B.C. 19-17세기의 유물로 소, 돼지, 사자, 양, 독수리 등 각종 동물상과 인물상, 모든 형태의 토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B.C.12-7세기의 새 히타이트 왕국의 전시실에는 석재들이 주를 이루고 거대한 인물상, 상형 문자가 동참한 인물 릴리프 석판, 스핑크스 등이 즐비했다. 그러나 놀라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당히 오래됐지만 매우 세련된 감각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탁자 두 개였다. 나무 탁자였으나 단순히 네 발을 네모 위에 올린 것이 아니라 네 발을 가운데로 힘의 분산을 꾀하면서도 아름답게 장식된 여러 개의 이음새를 힘차고 섬세한 곡선으로 배치했다. 다른 아래 죄인은 상부는 사라지고 유리판을 두고 있지만 진정하게 중국의 2개의 기둥만이 굵고, 상부는 가 언제나 그렇듯이 단단하게 보이는 재질의 목재를 잘게 잇는 힘의 분산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두 테이블 모두 원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현대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 과인호텔 방에 배치해도 품위 있는 듯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놀랍게도 기원전 8세기 것이란다. 놀라운 상승!거의 3천년 전에 이런 물건을 만들어 쓰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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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밖에도 한국사 연표와 비교하면 계산이 나쁘지 않고, 오는 연대의 유물들이 줄줄이 이어지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시대의 유물로 이어진다.가장 인류의 4대 문명 중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곧바로 인근에서 발발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유럽 땅으로 전파되는 허리 지점에 있어서 당연한 곳 하나이다.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하나 일찍 만들어진 이 문명의 결과물을 보고 처음에는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감정을 가졌지만 나쁘지 않게 관람을 마치고 푹 쉬다 보니 이것은 터키라는 한 정부의 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이며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발자취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한반도의 역사와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아시아 대륙의 맨 마지막 부분에 있는 작은 반도에서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오히려 이 나쁘지 않다고의 벽지에 들어 가면 최근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제작한 지면의 선주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긴 시간의 흐름과 관계 없이 현대 문명과 단절되고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드물지 않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3. 소피아 국립 현대 미술관 ​, 앙카라 박물관을 보고, 박물관의 중요성을 느낀 적이 있어, 역시 그다지 볼 만한 것이 없는 소피아에서 불가리아의 역사 아니라 보자는 생각에 발칸 호텔 뒤(뒤)에 있다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어떻게 찾아 갔다. 관람하기에 훌륭한 고대 유물이나 기억하는 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나 더 재미있는 것은 바닥이 마룻바닥으로 돼 있어 발걸음할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쁘지 않지만 소리가 나쁘지 않으면 전시실 모퉁이에서 여직원이 몰래 나쁘지 않아 감시(?)를 합니다. 자펜 교토의 장군 주거지였던 니죠 성 안의 복도가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해 바닥을 밟으면 소리가 나빠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을 보았는데, 유럽의 박물관 바닥이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의 하나였다. 박물관 내부 곳곳에서 여직원들이 의자에 가방, 코트를 걸치고 지루하게 앉아 있다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빠지면 하나 나빠지면 관람객이 그 후 직원의 시야에 들어갈 때까지 감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무언가를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기도 하지만, 이동할 때마다 내 발소리를 듣고 모퉁이로 나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나쁘지도 않은 아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걸 보니 부프답게 자존심이 상해 제대로 관람을 못했다. 서둘러 한 바퀴 돌았더니 마침 폐관 시간이 됐는데 화장실에 들러 현관에서 괜찮았던 거야 자, 직원들은 나쁘지 않아 책가방과 외투를 들고 퇴근하고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거리에 나쁘지 않다고 걸으면 국립미술관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박물관도 아닌 미술관, 그것도 불가리아의 미술에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다른 볼거리도 없고 관람 시간도 아직 남아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처음에는 역대 왕가 인물들의 초상화가 전시되고 전시실을 이동할수록 점차 현대 작가의 작품으로 옮겨지도록 배열이 돼 있었으나 건성으로 극복한 나쁘지 않은 시선이 점차 진지해졌다. 미술의 나쁘지 않은 프랑스에서는 시간이 없어 많은 그림을 보지 못했고, 시간예술의 전당 등에서 열린 다직 로코코 미술전이 나빠 피카소전 인상파전 등을 가 봤지만 제목만 요란했지 그다지 뛰어난 작품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학생의 졸업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 관람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도 적어도 내 눈에는 별로 좋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 외에도 미술과 연관지어 들어본 적이 없는 불가리아라는 '나쁘지 않은'의 국립미술관에 훌륭한 작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명이 키릴 문자로 읽히지 않았지만 오스만 터키군과의 전투 장면을 그린 몇 부작의 대형 그림을 우선 들 수 있다. 말과 무기, 진흙탕 속의 군인들 등 조국 불가리아를 위해 영웅적으로 싸워 승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고, 또렷한 명암의 매우 강렬한 터치로 완성돼 그림 앞에 서 있으면 가슴이 뛴다. 그러니 이 그림을 불가리아의 젊은이들이 보면 얼마나 나쁘지 않고 뜨거운 애국심이 솟아오를까. 공산주의 시절에 그려진 선전물성 그림 하나이기도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한마디로 이 그림은 단순한 장식용 벽걸이가 아니라 불가리아의 역사와 애기국심을 긴 호흡으로 토해내는 살아있는 예술품이라는 게 내 감정이었다. 역시 하나도 나쁘지 않은 인물상이고, 나쁘지 않은 최 어머니가 반쯤 엎드린 채 몸을 굽혀 아이를 가슴에 안고 있는 대리석 조각이었다. 길이 7-80cm정도의 소품이었는데 두 인물을 이루는 곡선도 하나품에서 아이를 안는 어머니의 사랑과 가슴에 안겨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고 있는 아기의 행복이 당신들에게 가슴에 전해진다. 폐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천천히 음미할 수도 없었고, 보통 자리를 비우려 하면 아쉽고 당황해 왔다 갔다 하고 이후 방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만난 것으로 정원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회화작품이 있었는데, 힘든 하루 한 과를 마치고 쉬고 있는지, 뭔가 가슴 아픈 한 가지가 있는지, 해지는 오후, 정원의 괜찮은 무 밑 의자에 홀로 앉아 쓸쓸한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서른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애처롭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보자마자 인물의 표정을 묘사한 최고의 회화 작품은 르누아르(Renoir)의 일렌 카앙 ダン베르(Ir Cne CaendAnvers) 씨의 초상화였다. 어두운 나쁘지 않는 무 다리 앞에 앉아 있는 하나 0대의 소녀상에서 백옥 같은 얼굴에 빛나고 회갈색 눈동자와 붉은 입술, 탐스러운 진한 차 색의 머리에 청록 색 머리띠,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멋지게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 이 그림은 고등학교 때 미술교과서에서 본 뒤 이상적인 여성상의 상징이었다. 그때만 해라서양은 우리와 당신 무나쁘지 않고 거리가 멀어서 비교도 안 되게 이미 있는 선진사회였고, 따라서 더욱 지극히 프랑스적인 이 소녀의 모습은 당신 절절한 내 삶에서는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각인됐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이런 걱정은 완전히 차단된 듯한 소녀의 표정은 비현실적이었다. 초상화의 모델로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와 뭐 하나, 아빠한테 혼나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천진난만한 소녀였을 텐데 그림에 그런 인간적인 느낌은 완전히 배제돼 있다. 한마디로 천사로 우화하기 직전의 인간이라고나 할까.소피아의 이 여자를 보기 전에는 르누아르의 그림에 그런 평가를 명확하게 내리지 않았지만, 이렌느와는 반대로 오른쪽을 향해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러나 당신 무나쁘지 않아도 인간적인 얼굴로 앉아 있는 여성상을 보고 나쁘지 않아 이것이 진실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박제처럼 현실과 유리되어 혼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림 너머에서 느끼는 느낌이 나에게 전해져 공감을 하나로 만드는 그런 가슴 아픈 아름다움이었다. 영어 제목이 병기돼 있지만 The leaves are falling이었던 나쁘지는 않다. 나뭇잎은 떨어지고...혹은 낙엽은 지는데...'나쁘지 않아'처럼 기쁨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여자의 모습. 실물이건 사진이건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상이고 정말 갖고 싶어. 이곳에는 직원들이 감시도 하지 않아 몰래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좋지 않아 양심적으로 그러지 못하고 마침 친절한 표정의 남자 직원이 지나가지 않아 물어보니 물론 안 된다고 한다. 대신 매점에서 엽서가 나쁘지 않으니까 팜플렛을 사라고 해.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어 모자 조각보다 더 애切하게 바라보고 돌아서더니 서둘러 현관 매점으로 내려갔지만 매점은 문이 닫히고 불도 꺼졌고 할아버지 두 분이 현관문을 닫으려 했다. 무늬가 나쁘지 않아서 엽서라도 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손을 흔든다. 아아, 답답한가. "The leaves are falling..."라는 영어 작품명만으로 키릴문자로 되어있고 작가 이름도 모르는 이 그림을 어디서 사진으로 나쁘지 않은데 또 볼수있을까! 미술관 현관을 나쁘지 않은데 여인의 처연한 표정이 떠오르니 내 마음도 그런 느낌이 든다.길을 걷다 보면 그리 크지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도 않은 미술관에서 이렇게 많은 걸작을 만나는 것은 그리 나쁘지도 않고 의외였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이라는 세계적인 미술관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한 곳에 이렇게 훌륭한 그림과 조각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처음 경험하고, 내가 다시 가 볼 기회는 아마 없겠지만 미술을 하는 학생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4. 데살로니카의 고고학 박물관 ​, 소피아에서 데살로니카에 오전 한시에 도착하고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메일 오라행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잠 좀 자고, 시내를 둘러보았다. 여행가이드북에 데살로니카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된 곳이 고고학박물관이었는데, 에페수스와 같이 성경에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던 이곳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줄은 역시 몰랐다. 그러나 데살로니카은 고대 마케도니아 복팡지 불량의 나쁘지 않아욧코 요즘도 그리스 제2의 도시로 북부 지중해의 요충이다. 지중해의 맑은 물이 내려다보이는 길을 따라 조성된 길로 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한 단에 들어서면 은은한 조명과 청결한 분위기가 최고급 호텔 라운지 근처에 와 있는 느낌이다. 미색의 벽을 닮은 색깔의 대리석 바닥으로 단지 골동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부 자체가 예술적으로 꾸며져 있다는 감정. 그리하여 전시물은 벽 내부의 전시공간에 들어가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든 전체 유리보호대 안에 있으며, 들여다보기만 하면 절대 손을 대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만질 수 없게 되어 있다. 박물관 1층에 있는 이 전시장의 제목은 "The Gold of Macedon"이 되고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유물들이 황금 세공품과 도금 등의 작품에서 작은 세공품의 경우, 보호막이 없으면 언제 훔칠지 모른다 것이었다.이런 건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몇 걸음 움직이던 나쁘지 않은 어느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통유리로 된 덤머벽 속의 작은 전시대 안에 월계관이 보이는데, 황금월계관이었다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머리 위에서 우리의 민족혼을 악착없이 불탄 그 월계관 만감이 교차하는 한가운데서 한을 풀고 있는 송기정의 그 초인간적인 표정, 그의 이마로 좋은 얼굴을 하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세계적 영웅임을 선포한 그 월계관. 낯선 장면이지만 이 장면 때문에 우리에게는 오히려 낯익은 신성한 것이 월계관이었다.그런데 여기 놓인 월계관은 역시나 다른 엄청난 것이었다. 활짝 핀 꽃과 우거진 잎을 그대로 메고 있는 월계수 가지를 2개 짜서 만든 형상의 이 황금 월계관은 보통 월계관 비등의 금괴가 아닌 봉우리도 그렇지만 잎도 깨끗하고 예쁘지 않고 종이 조각, 아니 쿠킹 허 하나보다 더 얇은 듯이 보이지만 모든 잎에는 앞면 뒷면이 명확한 날카로운 잎 꼴은 물론, 잎맥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가슴판의 가지에서 뻗은 잔가지에 고미 건조한 잎이 겹치고 매달린 잎이 겹치고 오히려 있는 모양, 월계관보다 더 미다. 그렇게 해서 정말 부드러워 보이고 무성한 잎사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마에 써도 긁히거나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놀랍다! 황금이 금속 중에서 색깔도 최고지만 연성이 커서 가공하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섬세한 형태로 변모할 수 있다니. 역시 황금이야말로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모양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그것도 미술 대학 같은 것도 없는 욤우오은쵸은 4세기에 말이었다 이런것을 현대에 만들면 물론 만들수는 있지만 예술적 감각이세계 최고의 금세공사가 아니라면, 대동소이하게 흉내 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월계관은 2개의 나쁘지 않으니, 가지의 모양을 따로 만든 뒤부터 맺은 것인지 밧줄로 묶은 형태까지 선명하다. 고대 마케도니아 땅이었던 이곳에서 귀족들이 권력과 종교적 상징으로 사교 모임이 나쁘지 않고 종교의식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이들의 호화스러움은 과연 어땠을까. 그보다도 이런 화려하고 섬세한 물건을 만들어 낸 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도제식의 공방의 같은 것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B.C. 4세기의 인물들이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나의 의식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월계관이 1개도 아니며 중국에 들고 관람할 것으로 전시장 곳 곳에서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고 계속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정교함도 더해지고 색상도 더 선명해졌으므로 델베니(Derveni) 무덤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완벽한 황금색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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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일은 많구나! 인간이 만든 이런 물건이 있었다니! 그런데 이런 것의 존재에 대해 왜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을까. 이럴 거면 세계사 교과서 한 구석에라도 소개됐을 텐데...그리스 하면 그냥 소크라테스 같은 철학자, 예술의 경우는 대리석 인물상이 본인을 떠올렸을 뿐이다. 이들도 들여다보면 아내들의 말에 앙카라처럼 택지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지만, 결국 이것들도 하나의 그리스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이며 같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다. 이런 견해는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하고 정원에 있는 운하 근처에 앉아 쉬면서도 매우 강렬하게 느낀 적이 있다. 전시장에는 물론 월계관 외에도 많은 보물이 있었다. 금도금을 한 다양한 형태의 작은 장신구와 황금으로 만든 반지,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 모든 것이 존재했지만 정교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델베니 무덤에서 출토된 목걸이와 귀걸이는 그 절정에서 정확한 무늬는 돋보기를 대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마치 비단으로 짠 거본인의 매듭을 만들어 만든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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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움 중 또 다른 하나는 금화 컬렉션이었다. 한 전시장 중앙에 은화와 금화만 모아 전시했는데 이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수많은 금화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크기도 맞지만 일 주화와 비슷하고 앞뒤로 각각 인물상과 금액으로 보이는 글자를 넣어 만들어졌는데 거의 요즘 동전처럼 정교하게 주조되었다. 필립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 주조, 유통됐다는 이 동전 발행 연대도 했다 바라다쵸은 4세기이다. 우리 사극에서 인물들이 이런저런 은밀한 거래를 할 때 끈에 차례로 끼워 넣은 상평통보 등의 엽전을 한 묶음씩 던져 예, 있다, 받아라 하는 모습으로 보아온 동전과 너무나 자신이 다른, 돈이 아닌 하나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고런 게 무려 2,400년 전의 B.C. 4세기에 조성되고 사용됐다니 놀라울 따름이며, 인류의 문명사가 이처럼 장구와 자신하는 것을 새삼 감탄하고 보게 된다.그런데 관람 중 사소한 사고를 냈다. 관람객들은 디지털카메라로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었지만 내 카메라는 구식 필름용 자동카메라인 데다 유물이 유리 너머에 있어 아무리 찍어도 제대로 자신이 오지 않는 것이 분명해 내 안에 도록을 사려고 사진을 찍지 않았다. 고런 박물관에는 하나 00%도록이 있을 것과 그 중 하 쟈싱 루루 사면 중요한 유물은 전체 가장 선명한 모습으로 설명과 함께 자신 올 테니 굳이 흐릿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남들이 다 찍는 걸 보니 도록에는 자신할 수 없는 것도 있을 것 같고, 욕심이 나서 화단 근처에 있는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플래시 기능을 끄고 습관 삼아 바닥을 향해 셔터를 눌러봤다. 기계적인 것을 다루는 데는 취미가 없고 카메라도 대충 구도만 잡고 찍으면 될 뿐 다른 기능을 켜서 사용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고 플래시정지 버튼이 있었지만 사용한 적이 많지 않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플래시는 켜지지 않고 셔터만 연다. 그래서 1장 찍어 옆을 보면 왠지 석관의 같은 것이 자신이 있다. 들여다보니 무덤을 통째로 옮겨 놓았는지 발굴 중 유골이 관 안에서 흙 밖으로 반쯤 노출된 채 누워 있지 않은가. 실물이나 복제물까지 조사할 틈이 없다, 어쨌든 이는 1장 찍어도 좋고, 석관 내부가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셔터를 끊었다. 그런데 아차, 철컥하는 소리처럼 눈앞에 엄청난 섬광이 하나로 관내를 강하게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실수가 있어서 이렇게 귀중한 유물이 가득한 곳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다니. 직원이 보고 오더니 직원이 다가와서 자신은 황급히 아까 보신 것처럼 습관을 고치겠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카메라가 오작동해서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됐다, 이건 정말 미안하다는 등 변명과 사과를 늘 그랬다. 그러자 직원은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라는 듯 계속 관람하라고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간다. 당황해서 그 자리를 물러났지만 정말 죄송했어요. 미안함을 느낀 것은 물론 그 직원에게라기보다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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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에도 계속되는 유물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전시가 정말 들어가는 순간, 앗, 이건 정말 충격입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집트 무덤의 금은 보물로 가득 찬 방...금제 인물상, 기마상, 금관, 목걸이 등이 산더미처럼 쌓입니다. 흘러가 발을 밟히는 그런 황당한 장면은 물론 없지만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보물의 방이다. 전시실 왼쪽에는 어마어마한 금항아리가 검은 전시대 위 유리공간 속에 찬란한 빛을 띠고 있으며 중앙에는 황금접시, 병, 주전자, 은잔과 그릇, 그릇 등이 역시 넓은 테이블의 유리공간 속에 모여 저마다 자기 색깔로 빛나고 있다. 벽면에 만들어진 전시공간에도 다양한 황금 장신구가 종류별로 나뉘어 시대를 초월해 빛과 인쇄되고 있다. 충분히 정리된 보물창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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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으로 된 것이라면 물론 베르사유 궁전의 대리석벽 요소들에 금박으로 칠한 벽면 장식과 기둥, 각종 가구, 그 정원 분수에서 물을 뿜고 있는 パ 등의 선명한 황금도금상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동양에서라면 역시 닛코 동조궁 벽면 장식이 섬세한 중심 금박도 매우 아름답다. 교토의 금각사는 건물 외벽 전체를 금박으로 칠한 것으로 그 점에서는 세계 유일의 건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다지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둥근 연못가에 홀로 솟아 있고 잘 다듬어진 소나무가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연못 주위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장관이다.하지만 여기서 전시실에 있는 물건은 전혀 다르다."데살로니카을 중심으로 마케도니아의 무덤에서 출토했다는 보물은 바람 전 6세기부터 4세기의 것과 위의 건물보다 대략 2,000년 전 정도 앞서고 제작된 것과 비교를 못 해서 벽에 붙임으로써 나의 외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유럽에서는 보통 보인다 근대의 인물상에 도금을 하고 둔 것과는 격이 다르다. 침을 꿀꺽 삼킨 뒤 먼저 금단지를 살폈다. BC 4세기의 것이라는 독의 전체 높이는 약 하나 m정도 되게 역시한 하나 m정도로 보이는 까만 전시대 위 유리 관 속에 두고 있어서 부리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각 부분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무난하다. 군데군데 금이 가고 푸른 빛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금 항아리가 아닌 청동으로 도금을 한 것 같은데, 이토록 어마어마한 크기여서 거의 우리나라 항아리를 금으로만 만들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황금으로 만들어도 일면이 균일한 색으로 아름답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 친숙해지고 청동 특유의 색을 보여 세월의 깊이가 느껴져 더 묵직해 보인다. 항아리의 몸체에는 아주 세밀한 부조가 장식되어 있는데, 남자들이 여자들을 껴안고 있거나 부드러운 포즈로 마주 앉거나 춤추듯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투수가 들여다볼수록 기가 막힌다. 디오니소(Dionysos)와 아리아드네(Ariadne)의 결혼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 릴리프는 나체 디오니소스의 경우 손은 완전히 돌출돼 엄지손가락부터 아이까지 각 손가락이 완벽하게 드러나 있고 손발을 비롯한 전신 근육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아리아드네는 신체 일부가 드러날 경우 흉부나 다리나 풍만하고 매끄러운 여성적인 몸매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신부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몸이 거의 드러난 얇은 천이 엉켜 구겨진 채 거의 매일 걷고 있는데, 당신에게 날아갈 듯한 모습이다. 아마 저런 옷차림이 실크로드를 타고 간다라를 거쳐 천년 후 동쪽의 작은 나라에서 에밀레종에 비천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 긴 시각과 공간의 간격을 훨씬 넘어와 이렇게 직접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역시 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축복 중 하나다. 항아리의 몸통 부조보다 더 놀라운 것은 큰 항아리의 입가와 몸통을 연결하는 목 부분에 부착돼 앉아 있는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의 전신상이다. 항아리 주둥이는 거대한 걸쇠와 같은 둥근 장치가 양쪽에 있고 그 아래에 다슬기처럼 생긴 장식이 각각 튀어나와 항아리의 앞뒤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는데, 이 걸작 아래 목 안쪽에 각각 한 쌍씩 항아리의 앞뒤에 앉아 있는 이 커플의 조각상이 걸작이다. 아리아드네는 자는 모습 하나와 잠에서 깨는지 팔과 몸을 꿈틀거리는 모습이 있고,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네드를 깨우듯 손을 내미는 모습과 몸을 뻗는 아리아드네 옆에서 좋아도 기지개를 펴는 듯한 모습을 각각 하는데, 이들은 입체상이어서 머리카락이나 옷자락, 얼굴의 표정과 손가락 등의 그 섬세함과 생동감은 부조로 표현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곳에서 아름다운 인체 조각을 많이 보이고,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분수 조각도 훌륭했지만, 여기에 있는 것은 극히 작으면서도 그것들 못지않게 섬세하고 그보다 약 2000년 이상 앞선 작품이라는 점에서 비교할 수도 없고 놀라움을 금할 수도 없는 것이다. 터키의 아나톨리아 박물관 금관, 금 팔찌 김 주전자 등은 바람 전 3천년 전의 것들이어서 시대적으로는 여기보다 열심히 앞서고 있지만 세 콘술의 수준이 물론 다르고 놀라움의 종류 역시한 다르다. 설명을 들어보면 이 항아리는 본래 와인과 물을 배합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더욱 놀라운 일이다. '결내용 술통'이라는 스토리인데,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한 술통이 지구상에 존재했다니! 하지만 실제로는 델베니의 무덤에서 납골함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화장한 유골을 황금 동전, 금반지, 금핀, 월계관 등과 함께 넣어 봉한 뒤 무덤 중앙에 안치했다고 한다. 표면에서 빛나는 금속은 금이라고 소견했지만 사실 이 항아리의 도금에 사용된 것은 황금이 아니라 청동이나 주석, 기타 성분의 합금이며 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요. 하아, 황금과 구별되지 않는 저런 합금도 있었나. 황금이 아니라도 황금 이상으로 가치가 있어 보인다.어쨌든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이 아름다운 물건은 내가 얼마 전까지 본 단일 미술품 중 단연 으뜸이다. 밀로의 비그다스나 모나리자보다 더 값진 보물이라고 소견되는데, 왜냐하면 비그다스류의 대리석 조각은 많이 있고 그림 중에서도 모나리자에 비견되거나 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무려 2,400년 전에 사람의 손에서 벌어진 이 작품과 과연 어떤 것이 아름다움과 가치를 겨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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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역시 자리를 뜨는 것은 댁무지만 언제까지나 이 유물만을 볼 수는 없지만 바로 옆에 전시된 황금병, 주전자, 은잔과 도자기 등을 살폈다. 이것들도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옆에 있는 아주 걸출한 물건들 때문에 귀엽게만 볼 뿐이었다. 벽에 설치된 액세서리등도 조사한 후, 매점에서"The Gold Of Macedon"라고 하는 도록을 샀지만, 역시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 점원에게 농후하게 해 보았다.저기, 금항아리는 정말 대단하네요. 정말 갖고 싶은 것입니다만, 만약 제가 그 항아리를 짊어지고 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부드러운 눈매의 미남 직원이 눈을 찡그리며 입을 한 손으로 가리고 살짝 대답한다.-응,요즘이아니라. 이따가 밤에...이거, 우문에 정말 재치있는 대답이었다.그런가요? 좋은 생각이네.어쨌든 이런 위대한 작품을 남긴 형님의 조상을 존경했다. 내가 기회만 된다면 꼭 아내와 함께 와서 저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직원은 고맙다며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인사한다. 아아, 인류사에 그토록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그리스 문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니, 인류문명의 위대함은 이렇게 대단하구나! 박물관을 나와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내가 이런 것을 볼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와준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5.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 산토리니에서 아테네에 도착한 네하과 여유를 갖고 제우스 신전 등을 시찰하고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가기 위해서 신타그마 광장에서 오모니아 광장 쪽으로 향했습니다. 걷다보면 오래된 대리석 건물이 나오고 그 옆에는 'National Historical Museum'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지금은 돈이 달랑 달랑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관람료도 왜 이렇게 2.39유로는 곤란한 금액으로 되어 있는가? 어떻게 할까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우연히 문 앞까지 왔는데 점심을 빵으로 때우더라도 하나 들어가 보자. 그런데 폐관 시간이 2시, 향후 20분 남았다. 박물관 폐관 시간이 역시 이렇게 빠른가? 문을 열고 들어가고 출찰구에 가까워지고 지갑을 꺼내니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으면 보통 들어 보고 있다. 세상에, 그런건가...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다니 내가 무료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어. 이러다간 몇 끼 안 남아서 식사 얘기가 한 번 바뀌는 것 아닌가? 받은 팸플릿을 보면 총 22개의 전시실이 있다. 그렇다면 낱낱이 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미로의 전시실을 구보로 지나가면서 보았다. 비잔틴 등 시대별로 칼, 권총, 장총 등 무기류와 전투를 묘사한 그림, 역시 각 지상별로 전혀 다른 양식의 의상, 장신구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권총은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나가쓰카와 마찬가지로 이곳이 더 다양한 것 같다. 결국은 살상무기인데 무슨 장식을 그렇게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하기야 내 펜 사무라이의 검과 갑옷도 이만큼 화려하다. 전투를 직업으로 하는 지배층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직업의 가장 중요한 도구를 화려하게 하는 것은 긍지를 드러내어 나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제펜 사무라이들은 검과 갑옷, 투구 등을 구입해 관리하는 데 수입의 엄청난 부분을 썼고 이 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0분간 그것은 이야기에서 전투하게 관람하는 나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말한 사실은 데살로니카의 유물과 이곳의 섬세한 의상으로 보이도록 인류가 하나 산적이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추구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어쩌면 소수 지배층이 그런 것을 더 누리려거든, 끊이질 않았어요 없는 전쟁을 역사를 이루고 왔다는 것이다. ▲ 제1=요즘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며칠 전까지 내가 머문 터키와 곧 맞붙어 있는 이라크에도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까지 이처럼 그리스에 왔듯이 행정부 간 경계 개념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지만, 부족한 자원과 냉혹한 자본과 개발 논리로 인해 생존을 위한 민족주의가 오히려 더 강화되고 각축하고 있는 실정이니 아직 인류에게 전쟁이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름대로 희망 섞인 예측을 한다면 행정부 간 분쟁은 무력이 아닌 조정으로 해결될 것이며 행정부의 틀보다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에 의한 정치가 이뤄질 날이 몇 세대 안에 올 것이다. 점차 경제체제가 개별행정부 단위보다는 전 세계가 상호의존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이므로 국지적인 전쟁에서도 모든 행정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앞으로도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아직 불완전하지만, 그 최초의 예라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요. 공짜였지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세계박물관의 진수를 보여주는 국립고고학박물관을 찾았다. 역사학박물관을 나와 거리 구경을 하고 한참을 걷다가 오모니아 광장을 지나 오른쪽 도로를 걸어 올라가면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 있다. 이것인줄 알고 표지판을 보니 국립대학이더라. 대학 옆에는 어떤 공사를 하는지 뒷면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고 대학 건물도 최근 대리석으로 지은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 보던 건물과 달리 약간 투박한 느낌이다. 역시 과거의 영화를 멀리 과거로 둔 채 현대 그리스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지.... 아무튼 이것이 박물관이 아니라면 박물관 건물은 어떤 것인가? 뒷편 근처에 쇼핑 스탠드가 하나 있어 물어보려고 안을 들여다보니 허전하고 귀여운 동양 처녀가 안에 앉아 있다. 한국인처럼 보인다. 얼굴을 안으로 밀어 넣고 물어봤다. 한국인이에요? し... 무슨 소리야?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인가? - 중국인이요? - 중국인이요? 아니요, 한국사람입니다.영어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니까 좋다고 해도, 잘 알아.-ᄅ 수 없다. 중국인이 세상에 널리 퍼져 있구나, 이런 경우까지 있을 줄이야. 중국인도 신기하지만 한국 여성이 아테네의 이런 매장 안에 앉아 있는 것을 상상하면 사실 집도 이상하다. 물론 유학이라도 온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물론 불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얘기였다. National Museum! 이렇게 크게 물었더니 손으로 후방을 가리키며 학교 뒤쪽에 있다는 것 같다.고마워요. 행복하세요.갸름한 얼굴의 중국 여성은 좁은 매장 안에서 수줍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대학은 유럽 대학들이 그렇듯 운동장 같은 건 없고 건물만 몇 개씩 들어섰다. 시간이 나면 들어가 보지만 요즘은 여유롭지 않고 학교 정면을 지나자마자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이곳은 정원이 널찍하지만 정원에는 이런 나무나 구조물이 조성되지 않고 잔디밭 밖에 벤치만 군데군데 놓여 있다. 역시 대리석으로 지어진 현대식 박물관은 서유럽 건물에 비해 단조로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런 것이 중요할지 안에 들어 있는 전시유물이 문화재다. 그런데 현관에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주로 밖으로 나가는 분위기였다. 카운터식 매표소에 가서 표를 산다고 했더니 "No, it is fhinished." 그렇다. 시계를 보니 2시 50분 정말 어떤 박물관이 하나 같이 이렇게 하나칙 문을 닫는 것이야! 예를 들어, 아까 역사 박물관처럼 남은 시간에서도 무료로 보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하나 0분도 보겠다고 했더니'안 된다!'단 하나 0분 이내에 급히 보더라도"No, it is impossible." 연 중년의 아줌마의 직원들 표정이 반드시 불가리아 여자처럼 냉정하다. 야단났군. 우선은 나 때문이다 박물관 개관 시간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행동했어야 하는데 오전에 바로 출발해 다녔기 때문에 이런 시간에 입장불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 역사박물관은 거기뿐일까 하고 이야기 했어. 기차나 비행기 등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만 시간을 보아 거기에 맞춰 이동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슬아슬하게 미리 몇 시까지 어디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꺼리는 나는 해외여행 등을 하면서 보기 힘들 정도로 불편했다. 여행 안내서를 보면 겨울철 개관 시간은 월요일의 하나에 하나 7시부터 나머지 필요할지가 질 무렵에 하나 5시경)까지이다. 사람에 따라선 밤에 호텔방에서 쉬면서 나 혼자 정서를 꼼꼼히 살피고 써둘 생각이지만 나는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일일이 보고 술도 마시다 보니 안내서는 읽는다고 읽어도 그런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 개관 시간이 여름, 겨울에 나뉘어 있어도 각각 월요일의 하나, 기타에서 갈렸지만 그 맨 아래에 나온다'겨울 머리 하나 08시부터 해 질 녘 하나 5시경)'이라는 것까지 보하 성이 있다...어쩌면 이러니 이른바 전문 여행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고 하지만 여기도 소피아 박물관처럼 직원들이 우르릉 코트와 가방을 가지고 퇴근한다. 현관을 나와 계단에 서서 내려다보면 젊은 여직원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뒷배를 물고 갑자기 모델처럼 변신해 동료들끼리 뿔뿔이 흩어진다. 학교도 빨리 돌아가지만, 더 빨리 귀가하는 곳도 있네.박물관의 문을 오후 3시에 닫아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밖이 좀 어둡다고 해서 내부 경비에 글재주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근무시간이 늘 그랬던 것처럼 가능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관람객들이 사건 없이 구경할 수 있도록 지켜보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나 혼자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 이곳을 보고 공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정원으로 내려왔다.근처 노점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마당 벤치에 앉아 우물쭈물 먹고 있으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가족들은 건강하겠다!나 혼자 오전에 호텔 근처에서 햄버거 하나 사먹었더니 신타구마 역으로 달려갔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하나 5시 30분. 공항에는 1시 반에 도착해야 하며 공항까지 이동 시간은 1시간 정도. 그렇다면 12시 반에는 짐을 꾸리고 출발해야 한다. 신타그마 역으로 아카데미는 역, 그 앞으로 역이 어머니 아욕이코 역에서 도보로 하나 0분 정도 거리에 박물관이 있다. 역에 내려 표를 사려고 했는데 역무원은 판유리로 밀폐된 공간 한쪽에 앉아 있고, 밖에 마이크가 있어 그곳을 향해 이야기를 하면 안에서 수화기를 들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오니아' 하니까 'What?' 맞아. 오모니아. I'm sorry 마소음이 급해서 오모니아가 이오니아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처소음 아테네에 도착해 오모니아역을 발소음할 때는 엄마여와 유사한 발소음 때문에 매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오모니아, 오모니아 여전히 기묘하다. 신타구마는 첫 번째 소음에 표를 살 때 산타구마로 발음하면 못 알아들어서 '소음, 산타구마?' 하면 'Ah, Syntagma!' 이렇게 통했어요. 산타라는 말 때문에 신타보다는 산티를 더 기억하게 된 것 같다. 산티그마로 발음하는 것은 예를 들어 서울에서 외국인이 발음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용산'을 '온샹' 정도로 발음하고 있었는데, '온산' 역시 '용산'으로 발음하면 아, 용산!'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오모니아역에 도착했다가 불티나게 박물관으로 향했어요. 현관에 들어서자 어제의 아주머니 사원이 발견되고, 금일은은 매우 기뻐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그런데 입장료가 7유로도 한다. 남은 돈은 잔돈까지 전체하고 50유로 정도밖에 안 되고 돈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만원 정도의 입장료가 너무 나오도록 높게 느껴지는데, 여기는 남은 하나 정의 하이라이트인 필수 코스인데 불만 해도 소용없다. 입장권을 받아 준비하기에 박물관 안은 따뜻한데다, 역시 뛰어다니고 입어 보아야 하니 윗도리는 허리춤에 두르고 스웨터도 잔뜩 보조가방에 끼웠다. 옆에 있는 거울을 보니 아테네 길거리에서 우글거리는 노숙자들과 인종만 다를 뿐 옷차림은 똑같았다. 근데전시장에 들어가려고 하면 친절하게(?) 소지한 짐은 맡기고 번호표를 준다. 가방에서 안내서만 꺼내 스웨터와 함께 맡겼다. 사각형 건물의 내부를 회랑식에 와서 배치된 전시실은 한개 층에 하나로-47개, 2층에 48-56참으로 열리고 있다. 56전시실?...전시실 한곳에서 2분 해도 한시간이었다 대개는 보통 방 하나 전체를 훑어볼 수밖에 없다. ​ 우선 엔트 런스 홀에서 바로 이어지는 제4전시실인'미케네 전시실'. 안내서에 의하면 이곳의 가장 중요한 유물은 아가멤논의 황금가면이라고 되어 있다. 가서 보니 황금을 얇고 늘 그랬던 것처럼 종잇장처럼 만든 뒤 두드려 요철을 만들고 탈을 만들지만 그 자체로는 그리 섬세하지도 않고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치지 않는다. 다만 B.C. 하나 6세기에 제작되었습니다.하지만 터키의 유물연대와 비교하면 이것도 별로 놀라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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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전시실에서 봐야 할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으로는 B.C. 2,800-2,300년대의 키클라데스 시대의 '하프 주자'입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작은 작품은 어렸을 때 점토를 가지고 사람을 만들 때 점토를 섞어서 둥글고 길게 만든 약간 소리와 그것들을 연결해서 다리과 팔 등을 연결해서 만든 단순한 양식입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고 얼굴도 코만 과인타과인이 있는데, 작은 music에 스스로 도취되어 고개를 들고 허공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듯한 연주자의 얼굴이 왠지 이스터 섬의 거석상 모습을 닮았다. 그 다른 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황금잔 등은 함부로 건너고 제9실에서는 크로스(Kouros)상과는 제 물의 석상이 나란히 있는데 그 중에 스니옹에서 출토됐다는 것은 높이 3m에 B.C. 6세기 것으로 합니다. 대부분의 석상 가슴, 복부 근육도 섬세하지만 성기까지 적과인으로 묘사한 것은 과인 같은 동양인으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렵다. 과연 우리 한반도 욜만 전 6세기에 성기를 섬세하게 묘사한 인물상이 존재했을까. 감상을 함에 있어서 예술적 판단 앞에 관습적 사건이 앞서고자 합니다.​ 자, 나의 하나 5실. 안내서에는 이 박물관 최고의 수작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사진이 너무 작아서 실제 모습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포세이든의 풋내기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전시가 정말로 들어가는 순간, 아하 실내의 중앙에 자리한 웅장한 인물이 곧바로 청동으로 표현된 포세이돈일로그아인. 그런데 안내서를 보고 예상한 것과 아니, 그저 상상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하다. 저게 정말 쇳덩어리란 말이냐? 이번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다. 한마디로 키 2.09m인 이 개인(상)의 거의 모든 부분이 인간보다 더 인간 다운. 1개 1개가 구별할 만한 머리카락과 잘 가라고 야 온 구레나룻, 근엄하고 튼튼한 표정, 전신에 붙은 손톱 근육. 완벽한 남성 몸매다. 지과인만큼 과장되지 않은 대흉근(가슴), 잘 발달한 이두누근(난통), 삼두누근, 복근(이른바 왕왕자), 하반신 대퇴근(대퇴이두근), 대퇴이두근(대퇴이두근), 장딴지 등 골고루 잘 발달한 근육이 실제 인체처럼 매끄러운 질감으로 완벽하게 구현돼 있다. 몸매뿐 아니라 목표물을 가늠하기 위해 직선으로 뻗은 왼팔과 창은 사라졌지만 그 창을 잡고 돌아서는 오른팔 각도, 정확하고 강하게 던지기 위해 균형을 잡고 땅을 밟고 서 있는 두 다리 간격과 발꿈치를 들고 있는 오른발 등 자세도 모든 면에서 완벽 그 자체다. 하나 926년'에 비아'라는 섬의 바다 밑에서 우연히 다이버에게 발견됐다는 동생 또 B.C. 460년대와 하니 도대체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한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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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얼마 전까지 본 인체 조각상 중 가장 큰 걸작은 미로의 비너스라기보다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였다. 고등학생 때인지 우연히 한 책자에서 피에타 씨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를 안고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대리석 조각은 두 사람의 배치본 표정도 놀랐지만, 마리아의 물결치는 옷자락, 특히 비단 옷자락에서 본 봄다운, 실제보다 더 볼륨과 굴곡이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묘사된 스커트를 보고, 저것이 과연 돌로 만든 것이라는 이 이야기인지, チョン이 이야기는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완전히 흰색으로 매끄러운 표면, 그것은 돌이 아닌 유약을 발라 구운 백자의 표면과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만약 처음의 내가 언젠가 그것을 한번 직접 보면 원한이 없다"라고 과장했을 정도로, 이 작품이 굉장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침 프랑스 연수 때 다행히 로마에 갈 수 있었고, 산 피에타 대성당에도 들렀는데, 그때 내 첫 번째 목표는 물론 이 피에타 상이었다. 성당 입구 바로 근처에 놓여 있는, 그것을 본 순간의 놀라움이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미 밀로의 비너스를 본 뒤였지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사진보다 또 너무 사실적이고 본인! 아, 인간이 돌을 써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게 인간을 재현했다는 이 이야기인가. 목이 타는 느낌이었다. 본인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석회암이 변성해서 만들어진 대리석은 막 채굴했을 때 굉장히 부드럽고 취급하기도 쉽고,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섬세한 보현이를 해낼 수 있겠지.우리 본인의 화강암으로는 새기면 다 부서질 테니 그런 무늬는 아이가 처음 불가능하고, 송글송글 모래알 같은 것이 있는 돌 표면에서 저렇게 매끄럽게 새긴다는 것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는 그토록 많은 아름다운 석상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그러나 여기 있는 이 청동상은 석상과는 또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쪼아 먹는 모양을 만들어 낸 것이 없는 주례 조이라는 제2공정을 거친 것 아닌가. 그러나 사방을 돌며 봐도 어디에도 이 매실 같은 곳은 없다. 물론 마무리 작업으로 잘 다듬어졌겠지만 언의의 외형은 완전히 한꺼번에 깨끗이 주조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옆구리에 노출된 갈비뼈가 허망하고 저 앞에 뻗은 왼팔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어떨까. 저거 혈관 아니야?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본인온도 아니고, 언의를 보면 안보초 정도로 실제 인체의 혈관처럼 푸르스름한 빛깔만 없을 뿐 태기본의 우습게 본 사람 뻗어 있는 곡선이 참으로 절묘하다. 내가 이 부분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하얀 귀밑털의 점잖고 지적으로 보이는 초로의 직원이 다가와 팔을 가리켜 보라. 혈관 묘사를 이 이야기였다- 아, 저도 최근에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정이 이야기 놀라워요. 굉장하네. 직원은 벌써 보고 있는 본인? 그러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선다.그런데 포세이돈의 눈 부분은 확 떠져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뚜렷한 소음영으로 보다 강인한 인상을 주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본인의 머리 안쪽은 비어 있다는 것으로 몸통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초반 주조 기법상 비어 있을 것이다.다시 한번 내가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것이 있는지 몰랐을까. 들어본 적조차 한 번도 없을까. 그리스가 서양문명의 원류라면서도 정작 그리스 자체의 고대 예술에는 우리 전체가 관심이 없었지만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 그에 기초한 교육에서 여기에는 식견도 관심도 없었던 것일까. 밀로의 비너스도 '미로'라는 그리스 섬에서 밭을 일구던 농부가 우연히 발견한 것을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 갔다는데, 사실은 당연히 이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의 어느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루브르라는 데 있기에 더 알려져, 모든 미술 교과서에 조각의 톱으로 본인이 오는 것은 처음이지만, 아테테 국립박물관에는 그에 못지않은 걸작이 또 있을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이 포세이돈의 청동상이 그 중에서도 맨 처음인 것 같다. 행여 첫 불행에도 포세이돈을 영국이 약탈해 가다가 최근 대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면 루브르에 있는 비너스와 남성미의 극치, 여성미의 극치라며 서로의 우열을 따지며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에 바쁘지 않을까. 자국 유물을 루브르에 가서 감상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인들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굳이 비너스와 포세이돈을 제 시간으로 비교하자면 비너스가 단순, 우아, 균형이라는 이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포세이돈을 보면 데살로니카의 청동 항아리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데살로니카에서는 겨우 첫 번째 미술품 중 그 항아리가 단연 으뜸인 줄 알았는데 포세이돈을 보니 정말 망설이게 된다. 시기도 대등한 소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두 유물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물론, 무의미한 쵸쯔이겟우 본인 아무래도 화려하고 우아한 공예품에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소장하려면 또, 항아리 쪽이 앞선다고 생각되고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포세이돈을 내세워야 할 것 같다. 참, 살다보니 이런 생각도 들게 되었군. 그 후 대리석상과 청동상이 전시됐고 그야말로 조각예술의 향연이었다. 그 중 특기할 만한 것은 길이 1.5m정도로 보이는 손이 있었지만 제우스 상의 첫부에서 손목 부근에서 굽히고 손만 남아 있으면 뭔가를 손 답게 손가락을 뻗어 있는 손의 모습은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특히 엄지손톱이 사실적으로 살아있는 인물의 손만 확대되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설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것이 제우스 양의 첫 부라면 도대체 신세 전체의 크기는 얼마나 본인이 된다는 이 얘기인가.또 하본인 특이한 물건은 헤르메스(Hermes) 상이라는 것이 있으며 머리는 근엄한 표정까지 매우 섬세하게 새겨져 있고 본인의 몸통 부분은 직사각형 기둥 형태로 되어 있으며 아래쪽에 성기만 돌출되어 있다. 사각 몸체에는 어떤 것이 새겨져 있지만 고대 체육관에는기념석주가 최초로 세워졌다고 한다. 묘한 물건이로군. 인물상의 얼굴 묘사도 허술한 데가 전혀 없고, 섬세하고 사실적인 포옹이 정말 상당하다. 아테네 사람들의 얼굴 모양을 보면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 같지만 특이한 점은 이마에서 눈시울을 거쳐 코로 이어지는 부분이 굴곡이 없고 약간 직선으로 연결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눈이 더 깊어 보인다. 중고교 미술시간에 누군가 본인이 한번쯤 그린 아그리퍼, 줄리안, 아리아드네, 비너스 등의 석고상에 본인이 있는 그런 얼굴이 이야기였다. 로마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 이런 모습이 자주 본인인 것을 보면 또 남부 유럽인의 전형이 그리스인이라는 것. 그런데 거리에서 보던 그리스 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곳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얼굴 모습이 약간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 조선이야기의 사진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생김새는 현대 한국인의 얼굴과는 많이 다르다. 소머싯은 음식이 달라 얼굴 모양도 달라졌을 텐데 어린 세대는 처음만큼 생김새의 본인 체형이 서양인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 TV에서 남북 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 헤어진 이유와 형제자매, 부모 자식 할 것 없이 어느 쪽이 한국인이고 어느 쪽이 북한 사람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닮은 얼굴이면서도 표정이 본인 몸 등이 확연히 달라서 살아가는 환경의 차이로 인간이 그렇게 다르게 변하는 걸 보면 왠지 슬프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근대에 들어와 얼굴 모양이 많이 변했다는 것인데, 그리스인들은 생활환경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는 것인지 현대 그리스인과 고대 그리스인의 생김새에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다. 여기 전시된 인물들의 두상은 자신들의 후손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눈동자까지 생동감 있게 살아 있어 지금도 입을 열어 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밤에 보면 머리만 살아서 전시대 위에 올려져 있는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오통돗 제21전시실이 본 인터넷했다. 이곳에 전시된 청동기수상은 안내서에서 그리스 예술품 중 최고 중 하본인과 극찬을 받고 있지만, 또 사진이 콩처럼 보여 사진을 보고 나서는 어떤 점이 대단한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또 다른 눈이 새삼스러워진 만큼 기대 이상이었다. 포세이돈 상과 마찬가지로 에비아 섬 해저 난파선에서 부서진 채 발견됐다는 이 기수상은 그래서 부분적으로 보수된 흔적이 있고 균열이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실물 크기만한 이 이야기가 앞다리를 힘차게 들고 달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뒷다리가 모두 땅에 닿아 있어 어쩌면 펄쩍펄쩍 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 이야기가 머쓱한 표정에 몸통과 다리 근육, 특히 허벅지가 터질 듯한 근육이 이 이야기의 생동감을 최대한 발현시킨다. 게다가 군데군데에 일어난 혈관이 부위별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면 B.C. 140년이라는 이 이야키웅 매우 최근 실제로 전력 질주, 몰렸던 이 이야기의 등에 스르르 올라탄 흔적만 남은 고삐와 채찍을 들고 이 이야기를 몰고 가는 소년은 용맹한 표정의 중심도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압권이었고, 동작도 무척 역동적이었다. 하아, 이런 일까지 있었구나, 본인. 신화와도 상관없는 이런 작품까지 바라기 전에 제작하고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다. 단 하나의 결점이라면, 이 이야기의 크기에 비해 소년이 너무 작아 밸런스가 다소 맞지 않는다는 것. 좀 위험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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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에도 청동상으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안티키셀라(Antiky thera)의 청년상이 있다. BC340년대의 유물도 '안 치키 세라'라는 섬의 해저 난파선에서 데리고 왔다는 이 작품은 근육질 청년이 튼튼히 서서 왼손을 뻗어 무엇 인가를 받으려 하고 있지만 튼튼한 표쵸은하, 전체적으로 안정된 자세의 무게가 대단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를 포함해 나체 상태의 남자 인물상에서 성기가 하나 같이 아주 작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도 목욕탕에서 늘 보는 초등학생처럼 보이지만 아마 인물상에서 성기를 강조하면 시선의 중심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해서가 아닐까. 즉 남성의 육체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육체와 그로 인해 표현되는 내적인 힘이라는 의견도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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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석 남성상의 백미는 미로섬 포세이돈 신전에서 출토됐다는 포세이돈이지만 청동상과는 역시 다른 장엄함이 있다. 하반신은 천으로 가려 왼손으로 잡고 있고 오른팔을 위로 구부려 이두박근이 튀어올라 본인이 올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석상의 크기도 크지만 파워 넘치는 근육과 웅장한 체구 역시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이걸 보면 남자 육체가 여자보다 예쁘지 않아도 더 멋지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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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비견되는 여성상이 곧바로 아프로디테 대리석상에서 상반신은 사람 모양이지만 각진 얼굴 모양과 다리가 염소로 되어 있는 목신빵(Pan)이 절실한 표정으로 본체인 아프로디테의 팔을 잡고 안으려 했고 아프로디테는 놀라 잡힌 왼손으로 중요한 부분을 가린 채 오른손으로는 왼발 샌들로 판을 두드리려는 모습이었다. 여성적 굴곡의 몸매도 1품이지만, 아프로디테의 어깨에 매달리고 판의 뿔을 잡고 휘두르는 에로스의 장난스럽고 귀여운 표정이 미소를 지겠습니다. BC1세기 작품으로, 델로스 섬에서 발굴됐다는 높이 1,3m의 작은 이 대리 석상에 세 인물이 입체적으로 엉키고 있으며 각각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왜 다시 안 놀라. 도대체 어떤 훈련 과정을 거친 어떤 사람이 조각했는지 택무 본인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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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자신의 후에는 보고 느끼자 즐기면서, 초스피드로 음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엄청난 청동상, 대리석상, 부각, 벽화, 토기와 도자기, 각종 장신구 등 한마디로 고대 조각예술과 공예물에서의 향연에 참여하는 기분입니다. 처음에는 이 많은 유물들이 전체 어디에 보관되어 있어 이렇게 한 곳에 그대로 모여 있는지 궁금했지만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니 위에 말한 것과 함께 신안 유물선의 도자기처럼 바다 속에서 건져 올린 것도 있고, 산토리니행 배에 탄 피레우스 항구, 오모니아 광장이나 신타구마 광장 공사현장 등에서 어떤 이유로든 빠져서 잊혀진 것이 자신의 묘지 등에서 발견되고 발굴되어 자신들씩 세상에 모여 인류 문화의 위대함을 웅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터키도 곳 곳의 입장료가 꽤 많이 먹힌 것에 이 고고학 박물관도 1만원이면 쉽지만 자신의 손의 중국에 돈이 떨어졌기 때문이지만, 만원 정도는 줄 것 같다. 서양문명의 원류, 그 진수를 가장 많이 모은 곳이 아닐까. 이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또 오모니아 광장까지 달려야 하는데 시간이 있었다면 더 천천히 음미했을 텐데 이렇게 콩볶음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입니다, 확실히 빌딩이다 대기업도 아닌 내가 이 넓은 세상, 어떻게 모든 곳을 여유롭게 음미하면서 걸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또 여행을 한다면 역시 시간에 허덕일 수밖에 없겠지, 이런 생각이 불편합니다. 6. 미술, 공예품 ​ 있는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특정 분야의 것, 가령 각국의 고미술품 이쟈싱, 도자기 컵, 화석 등을 수집하고 자기 안에 소장한 자료에서 개인 박물관까지 열때도 있지만 그것은 물론 시간적,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내 경우 프랑스 연수 기간에 사온 것은 거의 프랑스어 책이었고 그 외에는 흥미도 돈도 없었지만 단 한 영화에서 자신이 보던 점화식 권총 모형을 안 씨의 공예품 상가에서 보고 신기해서 산 것이 있다. 그 다음에 여행할 때 일부러 사건을 일으킨 적은 없지만 다닌다. 우리 신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저렴한 공예품을 보면 한 사람씩 사게 되죠. 인도에서 산 것은 곱돌로 만든 코끼리가 있지만, 섬세하게 조각한 길이 한 0cm정도의 코끼리의 표면을 일정한 무늬를 내고 파낸 후, 뱃속에 새끼 코끼리 모양을 하 쟈싱 더 조각하고 두었는데, 무늬 틈새에 어떻게 한마리를 더 만들 수 있었는지 그 절묘한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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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 카트만두에서는 공예품 상가 중 상회에 다양한 모습과 크기의 불상이 전시되었다가, 역시 우리 본 인 라의 불상과는 얼굴, 본인의 표정, 가사의 형태 등 분위기가 다른 점이 그와은심로우온 받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높이 각 15cm, 10cm정도의 청동 불상 두개를 샀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룸비니는 현재의 네팔 육지인 만큼 이 불상의 얼굴 윤곽은 둥근 우리 것보다 이곳 사람의 생김새에 가까운 곳에 더 가늘고 눈도 크다. 우리 본인라의 사찰에서는 이렇게 작은 청동불상을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판매용 공예품이기에도 매우 정교하고 품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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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카라'이라는 네팔 제2의 도시에는 만다라 전문 상사가 있어 전시된 만다라의 구조, 색, 보살의 형상 등 종류가 데당이 다양했습니다. 여행중의 경우로서는 벅차기 때문에, 방황하면서 생전의 아내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다가, 이것들을 제가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봐 결정을 내리고 본인 구매했습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세계를 지향한다는 만다라는 매우 섬세하고 도형적인 세밀화로 가운데 큰 원을 중앙에 작은 원이 겹쳐 그 안에 부처, 보살들을 정밀하게 표현하였는데, 아주 가는 세필로 머리카락 같은 선을 무수히 교차시켜 그리는 것을 보면 하나하나 그 안에 녹아든 화공의 정성에 감탄한다. 조금 깎아 하나 20달러를 주고 샀는데 옆 40cm, 세로 70cm정도 크기의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하루 하나하나 가끔씩 동그라미 삼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나 00퍼센트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문가가 세달이 걸려서 완성한 작품이 한두 만원이라...우리 본인 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우리의 소득 수준으로 가격을 매긴다면 아무리 당사자가 된다? 현재 소득 수준에는 최소한 하나, 000만원은 된다고 봐야겠지. 내가 지불한건 재료비 본인이 될지 모르겠어. 그 화공은 물론 나름대로 적당한 금액을 받았을 것이고, 본인으로서는 싸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차이는 결스토리 생활의 질 차이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서 어쩐지 서글픈 전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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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계림에서는 리강의 풍경을 그린 산수화를 하본인으로 샀는데, 동양화보다 동양화 같다는 리장 주변 풍경이 나름대로 재현된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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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진공항 면세점에서도 다시 산수화를 샀다. 제자의 글씨가 반초서체로 첩자(帖書)밖에 몰라 그 당시에는 중국어로 듣지도 못하여 어느 풍경인지 알 수 없으나 어두운 하상(河)에 그랬던 것처럼 운해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던 산중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는, 내가 보기에는 매우 힘든 스케일의 대작이었다. 추측해보면황산의모습이아닌가싶지만중국에서만볼수있는그림이라고소견할수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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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pan의 경우 처음 연수를 갔을 때는 먹고 마시는 것 이외로 Japan에서 돈을 쓸 수 없었고 책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1인어 교사가 되어 나쁘지 않고 몇년 후 아들과 함께 갔을 때는 어쨌든 1인어 교사인데다 Japan문화에 대한 흥미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바뀔 수 밖에 없어 매우 적극적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굉장히 나쁘지 않고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어차피 Japan의 모든 것을 알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학생들에게 작은 것이든 실물이든, 역시 학교에 가져갈 수 없는 것은 사진으로도 나쁘지 않지만 찍어보여주려고 눈에 띄는 대로 이것저것 샀는데 그러고 보니 Japan이야말로 내용으로 공예품의 강국이야. 인형 (화려한 기모노를 입은 여성, 사무라이, 옛 황실의 인물 등), 청동이 나쁘지 않은 목조 불상, 사천왕상 등의 조각류, 크고 작은 도자기류와 다양한 형태의 찻잔, 검이 나쁘지 않은 투구를 비롯한 시용품 모형, 동조궁에서는 건물 벽에 장식된 조각을 복제한 미니어처 액자 등 다녀서 절이 나쁘지 않은 신사, 유명 관광지의 공예품 매장, 심지어 단체손님을 받는 밥집에도 넓은 공예품 매장이 있어 가는 곳마다 저마다 특색이 있고 정교한 물건이 넘쳐나니 온갖 물건이 넘쳐나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우리의 가격도 매우 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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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에서도 압권은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절 입구에 펼쳐진 공예품 가게로, 언덕길을 따라 양쪽으로 수십 개의 가게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 진열된 상품도 매우 많다. 다양한 상품의 질도 그렇지만 좁은 공간에 매우 본인에게 많이 진열된, 본인 특유의 섬세함. 어느 도자기 가게에서는 작은 사발과 도자기들이 빼곡히 진열된 그 모습 자체가 예술이라 할 만해 그 모습을 감상했을 정도다. 그러다 아무데서나 물건을 사면 작고 싼 것이라도 예쁘게 포장해 주는데 특히 깨질 것 같은 것은 골판지 등으로 다르게 만든 튼튼한 전용상자를 이용해 손상되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줬다. 이런 종류의 섬세함과 그를 지탱하는 성실함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마도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우리와는 달리 외적 간섭으로 인한 급격하고 큰 단절 없이 문화가 처음 발달한 것도 그 안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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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하과의 특기할 것은, 닛코의 츄카지 공공예품의 점포에서 본 것으로, 부엌칼을 시작해 각종 부엌칼을 파는 소형씨가 있고, 이것들도 여기서 파내 보면, 벽에 실물 크기의 하나파운드가 죽 걸려 있다. 어, 저건 정말 검이잖아라고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나서, 하과의 고라칼로 검을 뽑아 보았더니 진짜 검이었습니다. 칼날이한쪽만있으니까정확하게말하면칼이아니라칼이지만어쨌든와이런것도판매하는구과인. 물론 칼날은 무뎌져도 이것은 그라인더과의 지석으로 갈아주면 되지 않을까? 사야도 멋지게 장식해 놓은 것이 오빠로 옛날 사무라이의 하나퐁당입니다. 아들과 와인은 놀라움으로 탐하도 과잉이라 하고 침을 삼키며 유심히 살펴봤는데, 가격은 5만원에서 8만원 정도이니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끝 칠로 입국할 때 통관이 되느냐가 문제였다. 내가 아는 한 무기류는 당연히 반입할 수 없다. 과연 이것은 무기일까, 공예품일까? 아주아주 판매 아줌마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대한민국으로 가져갈 수 없을 거라고... 그럴 것 같아. 밤을 새우면 이른바 회칼은 저리 가라는 진짜 무기가 될 텐데. 안타깝지만 이런 일이 통제되는 우리 과인라가 안전한 과인라라고 위로하며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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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로 만 원으로 5만 원대에 이렇게 산 저팬 공예품은 따로 작은 테이블에 전시하고 그 외 정부 것은 현관, 신발장 위 등 여기저기 들어갈 수 있는 장소마다 정리하고 벽에는 그림이며 글씨를 써 놓았다. 거금을 주고 산 것은 아니지만 수시로 들여다보며 팔을 올리거나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이번 여행에서는 언제 본인과 마찬가지로 집의 좁은 공간에 더 이상 쌓아둘 곳도 없고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느냐며 소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살 소견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동하는 길에 가끔 남거본인 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눈에 들어와 계속 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었다. 가장 아내 목소리로는 두바이 공항에서 이스탄불행 비행기 때를 기다리며 면세점을 구경했는데, 어떻게 보면 투박하고 투박한 기념품 가운데에 황동제품이 있고 그 안에 컵만한 크기로 축소시킨 황동 항아리가 있었다. 봉황 무늬를 가운데 처음으로 글을 복잡하게 교차시키고 섬세하게 담아 둔 이른바 아라베스크 무늬 1의 표면 장식과 작지만 안정감 있는 항아리형이 감정에 들어 잠시 망설였지만 하봉잉 샀다. 가격은 40Dhs에 1달러가 약 4Dhs정도니 10,000원 가량이 높지 않은 금액이지만 문제는 이 무거운 것을 처음부터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되 되느냐.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면 무엇을 살까 하고 배낭에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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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에서 생긴 일, 성소피아 성당 관람 중 한 행을 놓치고는 밖으로 직접 찾아와 찾았지만 포기하고 혼자 섭취했다. 식사 후 거리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천천히 광장 근처 거리를 구경했다. 뉴스, 당과 기념품점이 항상 일찍 있지만, 상사에 세밀한 공예품이 보이고 들어 보면 흥미로운 것이 꽤 있는 가운데 바로 지금 보고 자신 온 성 소피아 성당을 가로 세로 하나 0cm안팎의 크기로 축소시키고 놓은 모형이 있었다. 야아, 이건 대견하다! 이런 거대한 건물을 이렇게 작은 돔형 지붕으로 저고리다 성당의 정면, 4개의 아치까지 그대로 복사한 것처럼 만들어지고 있다니. 이런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또 이렇게 작은 미니어처로 만들다니,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대단하다. 이것도 가격은 별 문제가 없지만 섬세하게 만든 것을 집까지 원형대로 무사히 가져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터키인과 개별적으로는 처음 소음으로 긴 대화를 나누는데 젊은 직원이 영어를 잘해서 이 말을 하면 No problem이라고 한다. 튼튼하게 포장해 준대. 과연 여기서도 골판지 전용 박스에 포장해 주는데 배낭 밑에 넣지 않고 잘 되면 깨지지 않고 가져갈 수 있다. 사서는 자신 속에서 만난 하나행들에게 보여주면 정말 예쁘다고 감탄합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호텔에서 상자를 열고 가끔 보았는데, 이런, 이것이 내 수중에서 사라진 소음을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습니다. 배낭에 넣지 않고 보조가방에 따로 담아 다니다가 호텔 방에서 꺼내곤 했는데 어느 날 늦게 자신이 급히 버스를 타려고 달려가 자신이 오는 길에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때의 아쉬움은 어떤 보석을 잃어버린 정도일 거라고 자신? 그러고 보니 가격과 상관없이 정말로 이야기를 들었으니 산 물건이 사라지고, 다시 살 수도 없다면 어떤 경우나 자신과 비슷할 것이다. 만약 이스탄불에 다시 간다면 물론 사서 잘 보관하고 올거야. 그날 밤 탑카프 궁전까지 관람을 마치고 자유시각이 돼 식사를 한 뒤 밤의 성소피아 성당을 보러 가는 길에 카펫 상회, 황동 그릇과 공예품 상회 등이 있는 곳에 작은 화랑들이 보였다. 화랑이라기보다는 액자에 담긴 이런 전통 그림을 파는 상회라는 게 정확하지만 화풍이 인도 그림과 대등한 데가 있으면서도 더 간결하다. 서양화와 동양화와도 전혀 다르고, 아동 그림처럼 묘사가 단순하며 색감은 풍부하고 사랑스럽다. 동물 그림도 있고 주로 술탄이나 귀족 같은 사람이 앉아 주위에서 남녀가 이런 시중을 드는 그림이 많다. 아내 소음에 터키 화폐에도 익숙하지 않아 좀 비싼 것 같아 가격을 낮춰 때리자 You are joking?이라고 말하며 이는 손으로 직접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며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짓는다. 그냥 내가 올까 하다가 역시 이런 걸 여기나 아니면 내가 어디서 다시 보고 다시 집에 걸고 감상할까 싶어 다시 물었다. 그림이 덱무 많고 졸렬한 것도 있고 마침 마소움에 드는 것이 안 보여서 정말 헤매다가 그 중 마소움에 진입을 하쟈싱 골랐는데 50리라. 만다라만큼은 아니지만 세필로 색칠하고 윤곽을 그려넣어 회화라기보다는 문양에 가깝다는 감정을 가졌고 위에는 동양화의 화제처럼 아랍 문자로 뭔가를 써넣었는데, 그로 인해 더욱 특이한 감정이 되었다. 액자 뒷면도 유리로 되어 있고, 또 다른 액자처럼 되어 있는데 그림에 대한 설명인지 서신문처럼 보이는 것이 들어 있다. 종이의 모습으로 보아 매우 낡은 감정이다. 이는 안내서 사이에 끼여 배낭 등받이 쪽에 넣으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아내 소음에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지만, 남편이 점점 공손해서 자기 안에는 "sir"라는 호칭까지 사용합니다. 빈 이야기라도 훌륭한 작품이 많다며 동료들에게 많이 소개하겠다며 상점을 자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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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은 카파토키아에서 야외박물관을 관람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는데, 길 양쪽에 펼쳐진 공예품, 옷, 액세서리 등 상회의 엄청난 숫자에 놀라워하며 헤우소로 가려고 구석구석 가보니 작업장 같은 곳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아보니 대리석으로 이런 동물과 인물두상을 만들어 놓았다. 음, 또 묘한 것이 있어 과일, 아니 볼 수 없어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 삼국시대 삼각두건을 닮은 모자를 쓴 고대 인물형상의 두상이 검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뾰족한 코끝에 콧수염과 구레나룻이 자란 것이 매우 엄중한 표정이었다 주인은 어디 있는지 찾아봤지만 작업장 내부는 텅 비어 아무도 없다. 버스 출발할 때마다 언제인지 모르고 급히 인근 상가에 과인이냐, 저기 작업장 주인이냐고 물었더니 누군가 과인서서서, 내 작업장이라며 바로 옆 자기 매장으로 가자고 했다. 가게에 가보면 정말 비슷한 것과 아주 큰 조각이 있는데 내가 본 것과 같은 것은 없다. 쵸소움 본 그 장소에 데리고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다니고 코르니 40리라라고 할 것이다. 농후하기 때문에 돌멩이가 그렇게 비싼지 좀 깎자고 하면 깎기는 이 스토리라고 하며, 자기중심적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인물머리 상하과인을 덤으로 삼는다. 신문지로 대충 싼 것을 들고 버스로 향하기 너무 무겁다. 확실히 높이 15cm정도의 돌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과인. 무거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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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그 앞뒤에서 패션쇼까지 펼치는 피제품 제조판매장이 나쁘지 않아서 토기를 만들어 무늬를 넣는 것을 보면서 쇼핑하는 곳 등을 가이드의 안내로 가봤지만 나쁘지는 않은 옷 등에 관심이 없는 데다 비싸서 살 이유가 없었고, 토기는 큰 데다 깨질 염려가 있어 우리 도자기에 비하면 좀 화려하고 투박한 상념이 생겨 대충 보고 지나갔다. 대리석을 깎아 그릇을 만드는 공장을 방문했지만, 이쪽의 것 중에는 대형 항아리도 있었지만 작고 사소한 용기, 컵, 접시, 촛대에 사용된 것이다 소리 본 작은 항아리의 모형 등 아름다운 색깔의 여러가지가 있고 청자 색에 갈색 무늬가 지고 있는 높이 10cm정도의 항아리의 모형과 다크 그레이와 적갈색 무늬가 소용돌이 치는 대리석 포도 나카야마를 1프지앙아식 샀다. 이들은 베르사유 궁전의 내부를 매우 나쁘지 않고 게 화려하게 차려 입는 대리석과 유사한 상념이 들었는데 우리 나쁘지 않는 길에 서서 구경도 못하는 대리석의 컵이 10리라니까 8,000원입니다. 그대로 희고 반짝이는 것이 대리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베르사유 궁전을 보면서 대리석이 매우 다양한 색이나 무늬에 열린 1종의 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쪽에서 아무리 나쁘지 않아서 많이 산출되는지는 모르지만 이 가격도 공임밖에 안 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앙카라 국립고고학박물관에서는 관람을 마치고 매점으로 가보니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대단한 고대 문명의 유물을 보았기 때문에 뭔가 1프지앙어 기념을 남겨야 하도록 이집트의 미라처럼 생긴 10cm정도 크기의 검은 대리석의 인물상을 골랐는데 단순해도 어설프게 조각한 상념이 들어갔다. 이집트 미라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을 텐데 미라인지 물어보니 정확히 이해하고 나서 스토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몸통에 카교크알림표을 태연히 붙이고 두었는데, 그 가격이 12,000,000리라가 되고 있다. 네, 1십백천만십만. 천이백만리라! 즉시 2005년까지 혼용된 옛 화폐 가격이었어요. 이것은 물건 자체보다 가격통지표가 생생한 유물입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터키에서 2004년 화폐 개혁을 단행하고 학점을 백만분의 1로 줄였다고 하지만 천 이베 쿠만 리라면 현재의 화폐로 12리라, 한국 돈 만원 정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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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호텔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예쁘지 않다고 샤워를 하고 지갑을 열어보았는데, 한 화폐에 동그라미가 꽤 붙어있어서 세어보니 무려 일곱 개였다. 1000만리이다.와아, 1천만 리 화폐를 손에 들다니! 물론 현재의 화폐로 10리라인 돈 8천원이다. 전날 밤 호텔 바에서 마른 잎을 부르고 술을 마시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미스터 바르쉬에게 말했더니 요즘은 쓸 수 없는 돈으로 종업원이 잘못 주거나 나쁘지 않아서 몰래 끼어든 것 같다며 가서 바꾸겠다고 했다. 이봐,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어디 가서 일금 천만짜리 지폐를 만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 걸 일부러라도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이스탄불 지하수 저장고의 매점에서는 과거 화폐를 우표처럼 소장용으로 한페이지에 내놓은 것을 팔고 있고 샀는데, 크기도 제각각의 동전은 발행 연도에 의해서 1리라에서 1,000리라까지, 지폐는 10리라에서 250,000리라까지 있었다. 동전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일시적으로 쓸 수밖에 없어 적당히 만들어서 그런지 조악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느 이야기가 2004년까지는 몇명이 모여서 식사 준비를 하고 술을 마시면 일 억 수천 만리라를 지불했다고 하는 것에 우리 나쁘지 않자 강남의 아파트 한채 가격이면 조 단위로 이행하는 것이다. 바로 1차대전 후 독일의 인플레이션 귀취가 상상된다. 돈이 휴지가 아니어서 아무 것도 깨끗하지 않아 사려면 리어카에 가득 싣고 갔다니 그 혼란은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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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이렇게 쇳덩어리에 돌덩어리, 심지어 각지의 안내서적들이 자기 도록을 사서 배낭에 쌓아 올리니 이를 한번 들여오려면 용을 써야 한다. 그래서 소피아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이 배낭을 짊어지고 데살로니카헹 열차에 타려고 역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마침내 100m달리기를 해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그리스에서는 먼저 데살로니카의 고고학 박물관을 둘러보고 도록을 사보면 이곳 매점에도 공예품이 진열돼 있다. 박물관에 넘치고 쟈싱게 전시된 것을 주로 황금 제품인 찬란한 디오니소스의 요점을 따오는 일만 있다면 지기로 해서라도 오겠는데 그것은 꿈 속이라면 몰라도 직원과 제가 한 농그 다 sound처럼 불가능한 1. 제가 사는 것은 과거 이곳의 지배자였던 알렉산더 대왕의 머리 위입니다. 단아한 선으로 머리까지 포함하고 높이 15cm정도가 될 이 아름다운 청년 정복자의 두상은 흰색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석고상 줄 알았지만, 첨부된 그리스 문화부의 보증서를 보면 대리석으로 깎은 것입니다. 국가보증서까지 첨부된 대리석상의 가격이 만 원 정도다. 도 말하면 신고 테라코타로 된 받침대 포함 10cm정도 크기의 여성 두상이 있어 비자네스 줄 알았는데 그대로의 여성상이 되므로 이도 유물 번호 몇번째 작품을 복제한 것이라는 보증서가 첨부되고 있다. 대단하네, 생산 판매를 막으려고 이 작고 저렴한 공예품에도 국가가 보증을 서게 되어 있다니. 찬란한 유물을 감상하고 국가보증을 받은 미술품도 싸게 구입해 박물관을 자신 있게 기쁜 한 빨리 집에 돌아와 가정에 보여주고 싶다는 소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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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테오라의 수도원에서 산 프레스코화의 목판 액자는 이미 언급하고 있지만, 베이스를 금으로 칠해 기품이 있고 화면에 묘사된 예수와 성모의 묘사도 매우 정교하다. 이 작품에는 뒷면에 보증서를 붙이고 두었는데, 수도원의 그림을 주제로 직접 손으로 그린 가격 하나 5유로에서 만원 정도. 뒤로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지역을 둘러보고 모나스티라키 광장 근처 공예품 상가에서 산 청동 투구. 작지만 푸른 녹이 슬어 있었는데다 중요한 부분을 닦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기품처럼 보인다.산토리니에서 아테네로 귀환했을 때 거리에서 한 상사 안을 우연히 들여다보고 사게 된 또 다른 비잔틴 그림 액자. 높이 한 0cm도 안 될 것 같은 귀여운 이 작품은 검은 액자 틀에 은으로 포도 등의 문양을 섬세하게 해석하고 다시 화면 가장자맀지만 양측의 공작과 상하와 점에는 금 도금을 했습니다. 실제 화면은 높이 5cm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중에 그려진 그리스도 상은 메테오라 수도원의 것보다 더 색감도 좋고 섬세하다. 이런 일이 20유로, 이에 5천원 정도라는 것이라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 우선 Japan만큼 다양한 공예미술품의 종류에 놀라 가격은 은과 금을 사용하고 전통예술가들이 직접 정성껏 그린 미술작품이 만 원대라니 놀랍다. 과연 그리스가 관광대국이자 공예품의 원조라는 의견이 있지만 이런 것을 제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재료비를 제외하고 과연 얼마가 남을까. 이런 종류의 공예품은 우리 정부에서 본 적도 없고, 있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이 과연 정부경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까. 한국의 휴대 전화 및 기타 전자 제품, 자동차 1대면 수십, 수백개와 교환할 수 있어 국제 관계에서 정부의 경제력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봤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불국사 기념품점에서 본 일로 기억에 남는 것은 효도와 부채 정도라지만 문화다양성 면에서는 맥이 끊겨 아직 많이 복원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우리의 현재 역량이 다른 데 있어 위안이 될 것이다.마지막 하이라이트 출발 전날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지각해 프랑스어 하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뒤 시내를 구경하다 어두워진 뒤 호텔이 있는 프라카 땅에 왔다. 느릿느릿 걷다 보면 골목 사이 저만큼 위로 조명이 켜진 거대한 성벽 같은 것이 보인다. 저게 뭘까 하고 다가가면 아크로폴리스다. 어라, 저번에 산토리니에 가기 전에 들렀던 아크로폴리스가 여기 있었나? 지도를 보면, 아크로폴리스에서 중앙길을 따라 내려가면 모나스티라키 광장이 있고, 오른쪽 시가지가 프라카였다 그래서 새 태그 마나 광장에서 모나스 스티라키 광장까지 전철로 1역, 고고학 박물관의 한 오모니아 광장까지 다른 노선으로 2역 서울 사대문 내에 궁과 문화재가 모이는 것과 같다. 걸으면서도 다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도시 모드 곳곳에 볼거리가 산재한 근대 도시 파리와 달리 고대 도시답게 좁은 땅에 관광지가 집중돼 있구나. 아크로폴리스로 가려니 골목길이 건물에 막혀 가지 못한다. 한참 쳐다보다가 할 수 없이 돌아오는데 들어가면서 말하던 Athens Gallery라는 간판이 다시 보인다. 이런 어두운 골목에 갤러리가하면서 그냥 가까이 가보니 이게 아니다. 실내조명은 꺼지고 주요 작품에만 부분 조명이 되어 있지만 회화작품은 물론 고고학박물관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실물 대리석상, 청동제, 기타 모든 미술품이 넓지 않은 실내에 빼곡히 놓여 있다. 야, 이것 역시 장난이 아냐! 우리 정부에서 가끔 그림이나 서예 전시회에 간 적은 있지만 화랑 같은 데는 가 본 적이 없다. 일부러 들어가 둘러봤자 저 작품은 얼마 정도 하나요?라고 물어서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라고 당신에게 줄행랑을 치고 올 게 뻔하다. 하지만 여기는 외국이었어 꺼릴 것이 무엇이냐? 보신위대하다고 칭찬하고 나가면 되지. 들어가보려고 문을 열어보니 꿈쩍도 않는다. 벌써 닫혀 있구나 하고 찬찬히 밖에서 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진열창 한가운데 있다. 높이 40cm정도의 인물 전신상으로 치렁치렁 항상 착한 금발에 황금빛 피부의 여성이 휴은브이 조금 드러나는 잘 빛 드레스를 입고 나무 뒤 장 인디 베란다에 팔을 걸고는 밖을 바라보며 서고 있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얼굴이 당장 나를 바라보는 것 아닌가. 정면 조명을 받고 빛나는 눈으로 입을 조금 벌리고 뭔가 스토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깜짝! 저런 작은 조각의 얼굴 생김새가 정말 살아있는 인물 같은 것도 처음 봤지만, 생김새도 완전히 어제 본 흑진주 미녀의 얼굴 윤곽에 피부는 집시베리 댄서의 피부였다. 내려놓은 왼손에는 장미냐 동백이냐를 꽃송이가 아래로 한 송이 들려있고, 여자의 모습과 꽃을 보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집시 카르멘이 떠오르고, 마리아 까마귀가 부르는 격정적인 하바넬라 사랑은 자유로운 새(La mourest unoise aure belle)가 들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 칼라스가 그리스인이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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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갈 수 없어 정면밖에 보이지 않아 더 관찰할 수 없고 왼쪽을 보면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비슷한 크기의 인물상이 있다. 위가 평평하고 아래는 둥근 암석을 반으로 깎아 내부를 노출시켰는데 그 내부가 수정으로 이루어져 수많은 수정의 날들이 비어 있는 중앙을 향해 사방에서 돌출되어 빛난다. 그것을 산 속의 바위로 하여 그 위에 깔개를 깔고, 소녀가 소풍을 보았는지, 팔을 짚고 엎드려 있다. 다리 밑 본인은 하늘을 향해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현장감 있고 귀여운 느낌이 든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면 창문이 부러져 연결되는데, 여기서도 이런 조각들이 보이는데,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소녀상 또한 하본이다. 더 큰 수정암 끝에 소녀가 앉아 다리 밑 본인을 아래로 내려놓고 앉아 아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기대어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대단하고 본인 여기는 박물관도 아니고 로댕 본인 부르델 조각관도 아닌데 이런 게 있다니. 10몇년 전 모 백화점에서 불 델 조각의 방한 전시회가 있어 가서 보았지만, 중심에 소품으로 되어 인상적인 것이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미국 인물상은 거기서도 보이지 않았다. 또, 한 편의 원류가 되는 본인답다. 이렇게 어두운 골목의 불 꺼진 화랑에서 이런 걸 보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어떻게 할까? 소피아 국립미술관의 회화 작품은 책인 데살로니카 고고학 박물관의 디오니소스 항아리는 파는 것도 아니고 판다고 해도 본인과는 동떨어진 물건이지만, 여기에 있는 것은 본인이 살 수 있도록 판매를 목적으로 진열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수정 바위 위의 소녀상은 크기도 크지만 수정 때문에 거짓이 없고 예술적 품격보다는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며 거짓 없이 단순 처리된 베란다의 여상이 마성에 들어간다. "저것을 집에 두고 언제라도 본인이 볼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가격은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얼마나 본인이 될까. 하나 0만원?20만원? 공예품의 가격이 싸다고 해도 이곳은 네팔도 아닌 그리스였고, 게다가 저것은 어떤 유물의 복제품이 아니라 현대 작가의 창작품이었다. 즉, 지구상에 딱 본인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형편상 이런 것을 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아니 그보다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 받는 교사로서 이렇게 여행하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더 불필요하게 국부를 공개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포기하자... 그렇게 본인이 하기에는 당신 본인에 의해 간단하다. 이런걸 언제 다시 볼까? 게다가 저건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돈만 내면 어떤 본인 소유를 할 수 있는 건데. 그냥 가면 평생 후회하지 않을까?내가 여행할 수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본인은 승용차가 없다. 면허도 없어.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어. 우리 집에는 승용차라는 것이 있었던 적이 없다. 물론 내 주변의 누구를 봐도 차가 없는 경우는 거짓 없이 거의 없고, 내 동료에서는 더 거짓이 없고, 거의 없다. 이 본인이 이 중에 선생님만 한 사람이 면허증도 없다고 하면 대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프랑스 연수 때 유럽을 둘러보며 우리와 당신 자신도 달라 아름다운 유럽의 모습을 혼자 보는 게 안타까워 앞으로 본인은 아파트든 자가용이든 이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기에 필요한 경비를 가족과 함께 낼 여유가 생기는 대로 여행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왔다 갔다 할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러다가 집을 같이 살던 어머니를 남의 집에서 보내서는 안 된다고 몇 년 전 우여곡절 끝에 대출을 해 서울 시내에서 거짓없이 거의 가장 싼 동네 아파트를 한 본인으로 구입하게 되고 집에 대해서는 이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차는 비용도 문제지만 필요성을 못 느낀다. 출퇴근길에 운전하면서 화가 나는 것보다 신문보거 본인의 외국어 테이프를 들으면 편하고 얼마나 본인이 좋을까. 물론 주말마다 본인들은 이런 일을 속이지 않고 거의 할 수 없겠죠....할 수밖에 없잖아요. 기위 이전에 다 돌아봤고, 불과 몇 시간씩 꽉 막히는 도로 위 좁은 차 안에서 산나물 정식 같은 걸 먹고 오기도 힘들고, 앞으로는 모임이 있어도 멀리 가기는 최대한 빠진다. 어쨌든, 본인은 주말 본인들이, 자기 혼자 출퇴근 때문에, 비싼 가솔린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만큼 사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까? 저게 아무리 당사자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많이 주유 요금으로 한달에 얼마 본인 쓰는지 모르지만 그러고 보더라도 1~6달 기름값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게 이른바 명품시계책인 아내의 귀금속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의 골프채도 아니고 한마디로 소비성 사치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끼는 시계는 노상 표에서 1만원 아닌가. 이런 것들은 내가 가져가면 본인을 감상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리스의 진짜 조각으로 보여줄 수도 있고, 더 크게 보면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짓 없이 거의 영원히 우리 본인러의 외래미술품으로 남아 있어 길고 값진 물건이 되지 않을까. 비록 조선시대의 한 선비가 China 연행 도중 미술품 하본인을 구입해 업고 왔다면 그것은 한국의 유산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저걸 사서 억지로 끌고 가면 거짓 없이 오히려 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여하튼 문제는 가격이었다. 하나 내 하나, 다시 와보자. 호텔에 올 때 낮에 찾아다니지 못하도록 주변 건물의 이름과 도로표지판 등을 메모해 놓았다.다음 날 서둘러 국립고고학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신타구마 광장까지 전철로 와서 메모를 보고 달리듯 역행했다. 가보니 문을 열어 놓고 간밤의 작품은 무사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아주머니와, 잘생긴 아저씨가 반겨준다. 내가 어제밤 종이책인지에 이 갤러리를 봤는데 대단했다느니 하며 다른건 볼 겨를도 없이 이것이 마소리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즉석 그 베란다 여성상의가격을 물어보았다. 억, 아줌마는 내가 경계선으로 생각한 금액의 하나 20%를 부른다. 비싸네요. 작품을 보고 충분히 그 정도는 할 것 같은데 여행자에게는 좀 무리네요.이러면 즉석 하나 00%로 낮춘다. 목소리 어떡하지? 내가 생각한 한계이니까...비행기 시간이 거의 거짓없이 되어버려서, 작품 쪽을 좀 더 조사하면, 망설여서 본인이 될 시간은 없어. 당장 결정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시간에 쫓기면서 왔는데, 그냥 가기도 그렇고...카드가 불통이 되어 인출이 안되고 현금은 이제 5만원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카드로 외국에서 현금을 인출한 것도 아내의 얘기지만 물건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이 상상도 못한 일인데 생각해 봤는지 모르겠다.제 카드에 문제가 있어서 현금인출이 안되고 있는데 상품구입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시도해 보고, 비록 가능하면 살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아저씨가 카드를 받아 가자마자 "되었습니다. 결제가 되었습니다. 그래, 이건 시험이란 게 없어서 계속 뽑으면 즉석 끝 본인이지...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이건 그냥 내 것이 된 거야. 내가 외국에서 카드로 물건을 사는 구본인. 그리스 문자에 영문이 적힌 영수증에 사인을 신중하게 했고 숫자를 여러 번 확인했다. 그리고 영수증을 달라니까 손님에게 줄 그런 건 없어. "뭐야, 그럼 그 영수증이라도 복사해 줘"라고 갤러리의 명함도 카피를 받았다. 작품을 항공편으로 발송해 드릴까요?아줌마가 말하길 무거운 거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그렇게 된 일인가요? 하지만 그게 확실히 도착한다는 걸 어떻게 믿죠?한마디로 무식한 질문이지만 이런 일을 이런 식으로 산 적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하지 않을 수 없다.손님, 저희는 세계 각국의 고객들과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업한 지 수십 년 됐는데 그런 걸 신뢰할 수 없을까요?아줌마가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고 조금씩 이야기를 할 거예요. 과연. 얼마나 본인이 드느냐 하면 이주 하나 정도라고. 무거운데 그런가? 믿을 수 없는 것보다 지금 당장 가져가서 가족에게 보여줘야 이주 하나하나가 본인 기다릴 수 있다. 그냥 가져가겠다고 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하면 친절하게 어디서 저울을 가져와 재는데 8kg이었다. 아, 이걸 가져가려면 또 고난의 행군으로 구본인. 아저씨가 포장을 하러 지하로 내려가 고모에게 작가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작가의 작품 이력 사본을 가져다 준다. 보니 작가의 작품이 현재 그리스 외에 뮌헨, 몽프레에 등 공공시설에 설치돼 있는 것이 본인과 함께 있다. 목소리 역량있는 작가 같구나. 이런 사람의 작품을 내가 소장하게 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아저씨가 포장을 하고, 청년 한명과 다 함께 가져왔다. 아주 단단한 상자를 싸서, 크고 단단한 비닐봉지에 들어왔다. 웬만해서는 상처받을 염려가 없다. 근데 비닐백이 너무 커서 들기가 불편하지.그런데, 지금 가방 아랫부분과 조각 포장은 딱 맞는데, 위가 어떻게든 남아 헐거우니까 가방 손잡이 부분을 감아서 포장에 밀착시켜 붙이고, 그 위에 구멍을 뚫어서 손잡이를 새로 만들면 어떨까? 이 말을 하자 아저씨와 젊은 남자 직원도 좋은 생각이라며 꼼꼼하게 작업을 한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전갈이 급해서 본인은 아, 그만하면 돼라고 하는데 테이프를 철저히 여러 번 붙여 정성껏 마무리해 나가죠. 작업이 끝났다는 말을 들어 보니 그것이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하본인의 트렁크가 됐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게 되지만 본인은 두고두고 잘 감상합니다.그런데 이 8kg짜리 쇳덩어리를 들고 호텔까지 가는데 양손에 번갈아 들어도 팔이 빠지는 것 같다. 호텔에 도착하면 쉴 틈도 없이 짐을 싸서 출발! 터키와 그리스 아이고 공예품과 서적이 꽉꽉 들은 배낭 무게 아마 약 40kg한 손에는 8kg의 쇳덩어리 트렁크, 자신 먼 한 손에는 보조 가방, 완전 군장도 이 정도면 지봉잉다고 보지 않으면? 나의 본래의 무게까지 모두 하나하나 0kg정도의 몸을 끌고 가려면 거짓 없이 한가지 없다. 2-300m나 될까 했다 호텔에서 신타그마 역까지 비탈길이 멀리다. 시간에 쫓기지만 어쩔 수 없이 몇 번이나 쉬면서 기다리는데, 비싸든 싸든 모드 귀중품들, 값진 돈을 주고 산 건데 너무 힘드니 괜히 씁쓸하다. 이 상태에서 소피아역처럼 달리면 그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공항에 도착해 배낭과 조각을 누구 것으로 보내면서 본인이 자유의 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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